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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에 극장에서 2D 애니메이션을 봤다. 많은 추천을 받았고 기대를 했다. 게다가 한국 애니메이션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실망감을 느낄만도 하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정말 좋았다.
그렇게 좋았던 것은 그림체도 아니고 색감도 아니고 음악도 아니다. 바로 '이야기' 이다. 이 영화는 동명의 동화책을 원작으로 한다. 그리고 그 동화책의 작가는 상당히 유명하다. 게다가 이 책은 베스트 셀러이다. 이걸 가지고 '검증된 훌륭한 이야기'라고 말할 수 있으려나. 없다고 해도 이 이야기는 교훈과 감동을 주기에 충분하다.
애니메이션과 책 사이에는 상당히 많은 차이가 존재한다. 이 때문에 두 매체를 통해 접한 이야기의 분위기와 느낌이 확연하게 달랐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감동과 여운은 같았다는 것이다. 둘 다 좋은 작품이었다.
애니메이션에서는 책의 이야기를 거의 그대로 가지고 가긴 했지만 만약 책의 내용과 표현을 그대로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었다면 약간은 울적한 분위기의 '작품성이 있다'고 평가되는 스타일이 되었을 것 같다. 제작자들은 그걸 원하지 않았던 것 같고 책에서와는 다른 다양한 흥미거리를 만들어냈다. 그 결과 아이들이 힘들어하지 않게 볼 수 있는 영화로 만들어졌다(아이들은 자극적인 걸 좋아하니까).
그 몇 가지를 꼽아보면
나그네 영웅화 - 책에서 족제비의 눈은 나그네 그런것이 아니다. 입싹이 그렇게 만든거지. 나그네는 거의 싸움을 하지 않는다. 단지 춤추듯 경계만 할 뿐이다. 애니메이션에서는 나그네를 싸움도 잘 하고 용기있고 잘 날아다니는 청둥오리로 그려 무리의 영웅으로 만들었다. 아이들은 이런 캐릭터를 좋아한다. 나도 좋아한다.
새로운 캐릭터, 달수와 잭 - 책에서는 없는 캐릭터이다. 책에서는 애니메이션에서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 동물들?)보다 그 수가 더 적다. 다들 힘들어 하는 인물들 뿐이기 때문에 아마도 분위기를 살릴 수 있는 새로운 캐릭터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정말 애니메이션의 분위기를 마구 끌어올렸다. 더불어 책에서는 무섭고 권위적인 캐릭터였던 개와 수탉 역시 애니메이션에서는 어벙한 캐릭터로 그려졌다. 아이들은 권위를 싫어해. 나도 싫어한다.
입싹의 이름짓기 - 애니메이션의 초반부에 입싹이 만나는 동물들 마다 이름을 지어댄다. 취미가 작명인 것 처럼. 책에서의 입싹은 그렇게 들떠 있는 닭이 아니다. 애니메이션에서는 입싹의 호기심과 마당에 대한 간절함이 책에서보다 더 잘 표현되었다.
개그 씬과 경주 씬 - 역시 아이들을 위해서는 흥미를 높일 수 있는 요소가 필요했나보다. 나를 위해서도 필요하다. 책에서는 이런 장면이 없다. 파수꾼이라는 임무에 대한 비중도 그다지 크지 않다. 보이는 것이 중요한 애니메이션을 위해서 이러한 요소를 듬뿍 집어넣은 것은 참으로 훌륭했다.
전체적으로 보면, 동화책에서의 이야기는 단순한 구조로 온종일 침침하게 흘러간다. 아예 처음부터 천천히 슬퍼지기 시작해서 마지막에는 고조에 달하는 느낌. 희망적이고 격렬하고 역동적인 부분에서도 이러한 곡선이 올라가지는 않는다. 차분하게 차분하게 입싹과 초록이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반면 영화에서는 신난다. 조금 더 희망차고 재미있다. 감정의 곡선이 오르락 내리락 한다. 그리고 결국 감동 혹은 슬픔으로 막을 내린다.
이러한 차이는 있지만 결국 얻어가는 교훈은 같다. 이런 것들은 단지 표현의 차이일 뿐이다(아무리 그렇다 해도 동화책은 아이들이 보기에 조금 우울하다).
다른 한 편으로, 기존 국내 극정판 애니메이션에서 가장 한심했던 것이 음성이었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본 후 책을 읽는 중에 입싹의 대사에서 자꾸만 문소리의 목소리가 들린다. 처음엔 낯설었는데 어느새 목소리와 그림이 맞아가고 있었다. 문소리와 입싹은 정말 잘 어울린다.
이 극장판 애니메이션은 참 좋았다. 이야기는 어른들 수준이지만 그림과 표현은 아이들 용이다. 아이들이 이 영화를 보면서 전체적인 이야기를 생각하지 않아도 그때그때 웃고 즐길 수 있는 자극이 있다. 반면 책은 아이들이 읽어야 할지 어른들이 읽어야 할지, 누구에게 추천해줘야 할지 모르겠다. 무시무시한 동화책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공교롭게도 '7광구'에서의 베스트 신과 같은 소재인 박수이다.
'이제 여러분들이 박수쳐줘요(맞나?).' 그러자 일제히 '짝짝짝!' 아 귀여워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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